180억 자산가 "주식에 60억 투자하고 싶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지난 14일 A증권사 서울 강남지점에 근무하는 프라이빗뱅커(PB)는 한 고객에게서 주식을 60억원어치나 사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금융위기 이후 2년간 현금 180억원을 은행 예금에 맡겨 놓았던 고객"이라며 "금리는 낮고 예상과 달리 부동산시장이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주식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고액 자산가들이 당분간 저금리가 유지될 것 같다는 판단에 주식 등 위험자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기준금리 동결 이후 채권 수익률 등 실세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고액 자산가들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 시중돈 증시 유입 가능성
= 고액 자산가들이 주식 쪽으로 관심을 돌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절대적인 금리가 너무 낮아졌다. 3개월 연속 금리를 동결한 금융통화위원회가 올해 중에 금리를 한 번 올린다 하더라도 소폭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기준금리 2.5% 시대에는 예금 등 이자를 따먹는 상품에는 투자할 만한 동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이 앞다퉈 유동성을 풀고 있다. 갈 곳 없는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몰리면서 증시가 하락할 위험은 상당히 낮아졌다는 것이 고액 자산가들 판단이다.

박경희 삼성증권 SNI강남파이낸스센터 지점장은 "증시 상승 가능성을 높게 보면서도 코스피 1900선이 부담스러운 고액 자산가들은 주가연계증권(ELS) 등 대안상품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국내 증시가 너무 올랐다고 판단하는 고객은 관심을 외국으로 돌리기도 한다. 올해 들어 주요국 가운데 증시 상승폭이 가장 낮은 중국 본토 증시로 돈이 몰리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정선진 국민은행 청담PB센터 팀장은 "부동산으로는 자금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며 "은행 상품을 예금과 주식형 상품으로 구분하면 3대7 정도로 주식형 상품인 ELS나 주식형 펀드에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
= 기준금리는 동결됐지만 실질적으론 시중금리 인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소비자물가가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실질금리가 마이너스권에 진입하면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대기성 자금이 새로운 투자처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대개 주가와 금리는 '역의 상관관계'를 갖는다. 실질금리가 낮을 때 은행이나 채권에 묶여 있던 자금들이 주식시장으로 몰려드는 것이다.

실제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주식시장이 강세를 보인 것 역시 낮아진 실질금리 효과 때문이다. 실제로 이 기간에 1000에 못 미쳤던 코스피가 2000까지 치솟았다. 시중 대기자금이 펀드 열풍과 함께 주식시장으로 몰려든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이 기간에 은행 총예금은 500조원대에서 좀처럼 늘어나지 않았다.

이수진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실질금리가 사실상 마이너스 상태여서 갈 곳 잃은 풍부한 유동성이 다시 주식시장으로 흘러들 여지가 커졌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금리 동결은 또 '환율 하락 속도를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어 증시에 악영향을 주는 환율 부담을 완화해 준다는 측면도 있다.

◆ 최대 수혜주는 건설
= 금리 동결로 인해 가장 주목받고 있는 업종은 건설사, 그중에서도 중소 건설주다. 중소 건설사는 부동산 경기 악화에다 PF 자금에 대한 압박까지 겹쳐 금리 문제에 민감했기 때문이다.

이경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저금리 유지는 유동성 리스크에 시달려온 후선 건설사들에 긍정적이며, 업황 개선으로 건설사 영업현금흐름 개선도 예상된다"며 "내년 상반기까지 중소형이나 저가 주택 위주로 미분양 소진이 지속될 것이며 1차적 수혜주는 유동성 리스크를 지녔던 중소 건설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항공, 자동차, 섬유ㆍ의복 등 업종이 강세를 보일 것이란 의견도 나오고 있다.
조병현 동양종합금융증권 연구원은 "금리 동결로 주가 기대수익률에서 AA-등급 3년물 회사채 금리를 뺀 일드갭(yield gap) 추가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며 "일드갭이 높은 항공, 자동차, 섬유ㆍ의복 등 업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15일 오후 1시 현재 코스피는 전날보다 0.1% 떨어진 1897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