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번지는 유럽 재정위기 ◆
유럽 재정위기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우리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당초 금융시장 변동성은 커지겠지만 실물경제 영향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으나 최근 돌아가는 상황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7500억유로 재정안정기금 조성과 유럽중앙은행(ECB)의 그리스 국채 매입 등 긴급 처방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미국 금융시장이 요동치자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금융시장에 불안감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금융시장 불안으로 개인과 기업의 소비ㆍ투자심리가 악화되고, 유럽의 긴축 재정에 따른 수요 감소로 대유럽 수출이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 밖에 금리 인상 시기를 저울질하던 출구전략이 늦춰지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될 위험도 제기되고 있다.
◆ 중국 이어 두번째로 큰 수출지역
= 유럽 재정위기를 초래한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은 물론 다른 유럽 국가들도 재정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긴축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는 유럽 지역의 총수요 감소로 이어지면서 우리나라의 대유럽 수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유럽연합(EU) 전체 27개국에 대한 수출 비중은 지난해 기준으로 12.8%에 달한다. EU는 중국(23.9%)에 이어 우리나라의 두 번째 수출 지역이다. 아세안(11.3%)과 미국(10.4%)보다 비중이 크다. 유럽의 수요 감소가 수출에 영향을 주면 실물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수출이 구심점 역할을 한 점을 감안하면 결코 가볍게 봐서는 곤란하다. 정부가 '유럽 재정위기 실물점검반 회의'를 통해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특히 그리스가 해운 강국이어서 남유럽 수출 비중이 큰 조선업종의 피해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남유럽 5개국은 선박 수주량으로 보면 척 수로 30%, 금액으로 20%를 차지하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협상을 타결 짓고 올해 안에 발효를 목표로 하고 있는 한ㆍEU 자유무역협정(FTA)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ㆍEU FTA 발효가 지연되면 이를 활용해 한ㆍ미 FTA 등 다른 FTA 협상에 지렛대로 사용하려던 정부의 동시다발적 FTA 전략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 글로벌 성장 속도에도 악영향
= 가장 염려되는 시나리오는 남유럽에서 시작된 재정건전성 이슈가 전 세계로 확산될 가능성이다. 미국과 일본 등 국가채무 비율이 높은 국가들이 일제히 재정건전성 확보에 정책 최우선 순위를 둘 수 있다.
세계 각국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인 재정과 저금리 정책을 활용한 만큼 이를 원 상태로 돌려놓는 출구전략 본격화를 앞두고 있다. 필연적으로 거시경제 긴축을 필요로 하는 시점에서 유럽 재정위기가 긴축재정 목표를 강화하는 방아쇠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재정 긴축이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세계 경제 성장세가 당초 전망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들은 금융위기 회복을 위해 지출한 비용, 즉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유럽발 재정위기가 이러한 추세를 앞당겨 세계 경제 성장 속도를 둔화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 금융시장 급변에 심리 악화 염려
= 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변동성을 키우는 것 자체가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그리스에 대한 대규모 자금지원 방안이 제시된 이후 금융시장이 안정될 것이란 당초 전망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특히 이번 재정위기 타개 방안에 대한 유럽 각국의 해법이 한목소리로 나오지 않고 있는 점이 큰 부담이다. 재정위기 국가들의 긴축정책에 대한 국민의 극심한 반대 시위와 각국별로 다르게 진행되고 있는 총선 등 정치 일정 등 정치ㆍ사회적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 유럽 금융시장은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이때마다 미국과 아시아 금융시장이 즉각 반응하면서 동시에 불안감이 확산될 수 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대유럽 수출 감소로 인한 직접적 영향보다 국내 금융시장 불안이 확산되면서 경제 참가자들의 심리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더 염려된다"고 말했다.
◆ 수입물가 급등세로 돌아서면…
= 예상보다 빠른 성장으로 인해 출구전략 시점을 조율해야 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유럽발 재정위기가 큰 변수로 작용하게 됐다. 우선 예상보다 성장률이 둔화될 경우 금리 인상으로 대표되는 출구전략 시기를 다소 늦춰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정부로서는 이제 막 민간 부문 고용이 확대되기 시작한 시점에서 유럽 위기로 인해 성장세가 둔화된다면 출구전략을 검토할 만한 여유가 없다.
문제는 유럽 위기로 인해 유로화 약세, 달러화 강세 현상이 나타날 경우 원화값 약세에 따라 물가가 상승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올 들어 원자재와 농산물 가격 상승 등 물가 불안 요인이 나타났음에도 우리 경제가 감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원화 강세로 수입물가가 안정됐기 때문이다.
만약 수입물가마저 급등세로 돌아선다면 한국은행 입장에서는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유럽 재정위기는 오히려 출구전략을 앞당겨야 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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